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딧불이의 묘 (문단 편집) == 상세 == 소설은 1967년 잡지 [[http://www.bunshun.co.jp/mag/ooruyomimono/|올(all) 요미모노(オール讀物)]] 10월호에 게재해, 같은 시기에 발표한 단편 <아메리카 히지키(アメリカひじき)>와 함께 제58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1980년대 초반, 2002년, 2003년, 2006년에 번역 출간했다. 내용은 사실상 작가 본인의 자전(自傳)으로 실제로 기아로 여동생을 잃은 체험이 바탕이 되었다. 그덕에 원작 소설은 애니메이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보다는, 당시 기성세대에 대한 시니컬한 냉소주의가 더 강하다. 노사카 아키유키의 데뷔작 '에로 선생님들'은 [[포르노]] 감독을 주인공으로 욕망에 충실한 전후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 소설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인류학 입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요컨대 냉소주의와 풍자, 골계미적 성격이 강한 작가. 소설 반딧불이의 묘는 굳이 예를 들자면 [[노벨문학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비슷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노사카 아키유키는 어린 시절 부모의 별거 및 이혼으로 인해 다른 집안에 입양되었다. 그런데 고베 공습으로 양아버지를 잃는다. 이어 피난을 간 [[후쿠이현]]에서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잃었다. 이때 여동생을 구하지 못한 속죄를 위해 소설로 쓴 것.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죽었지만, 노사카 아키유키는 살아남아 방황하다 친아버지가 다시 거두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종의 참회록으로 쓴 소설이지만,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 속의 세이타는 상냥했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면서 "여동생(1년 4개월)의 먹을 것을 뺏아먹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잔혹한 오빠였다. 여동생을 때려 [[뇌진탕]]을 일으키게 한 적도 있다. 소설을 쓰다 보니 일기를 공개하는 것 같아, 있는 그대로 쓰지 못하고 자신을 치장(미화)하는 거짓말을 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읽지 못한다. 또 이 소설로 돈을 벌고, 애니메이션화가 되어서 인세를 받는 것이 깊은 상처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애니메이션이 완성되고 마련한 시사회에서는 영화를 보다 감정이 북받쳐 도중에 퇴장한 일화가 있다. 노사카의 다른 단편 중에는 '고추잠자리'도 있다. 이게 일각에 도시전설처럼 와전되듯 알려진 "[[카미카제]] 대원이 훈련기 몰고 자폭하려다 콕핏에 앉은 벌레를 보고 순간 생명의 귀중함을 깨달아 적함까지 갈 남은 연료를 무인도 가는데 써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름"이라는 일화의 원전이다. 해당 작가의 다른 서적에 대한 해석적 방법론에 대한 논문에서, 작가는 전공투 출신이며, [[천황]]제를 부정하는 신좌익계라고 분석한다. 반 미국, 혐 일본적인 사상적 전환을 가져 정치적 발언으로 이러한 소설을 연속으로 출간했다고 분석한다.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59528896|#논문]] 노사카 아키유키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한 인물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나 [[아베 신조]] 등의 [[일본 총리]]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며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원고에서는 "'''이 나라에 전전(戰前)이 차츰 다가오고 있음이 확실하다(この国に、戦前がひたひたと迫っていることは確かだろう)'''" 즉 일본이 과거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기 전처럼 사회 곳곳에서 우익들을 중심으로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군국주의]]를 부채질하고 이를 동조하는 움직임이 슬슬 일어나고 있다는 섬뜩한 경고까지 남겼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22&aid=0000157979|#]]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155282|#]][[https://mainichi.jp/articles/20151211/k00/00m/040/109000c|#]][[https://www.amazon.co.jp/%E7%B5%B6%E7%AD%86-%E6%96%B0%E6%BD%AE%E6%96%87%E5%BA%AB-%E9%87%8E%E5%9D%82-%E6%98%AD%E5%A6%82/dp/410111210X|#]][[https://www.yna.co.kr/view/AKR20151211071200073|#]] 그가 극우라고 잘못 알려져 [[김세완]]은 1990년대 후반, [[유니텔]] 만화동호회에 이러한 글을 쓰기도 했다. 당시 "누이동생이 죽은 걸 미군 탓으로 여겼다"든지 "빵이나 서구풍 음식을 먹으면 굴욕"이라는 망언을 했다고 서술한 적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